Luca

<LUCA> 작가노트

몇 년 간 제주도에서 <생명나무>와 <나비> 작업을 이어갈 때, 흰 사슴에 관한 설화를 듣게 되었다. 한라산은 원래 신선들의 산으로, 신선들은 흰 사슴을 타고 다녔다. 신선들은 흰 사슴에게 한라산 정상에 있는 맑은 물을 먹였다고 전해온다.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은 ‘흰 사슴이 물을 마시는 연못’이라는 의미다.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나는 2007년에 <신화적 풍경> 시리즈를 발표한 바 있다. 원시적이면서도 시적인 풍경들에서 받은 영적인 느낌이나 상상을 다양한 연출과 설치를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해보던 실험기였다. 

그 때 나는 온전히 내가 느끼는 숭고함과 경외감이 만들어낸 상상의 결과물인 줄로만 알았던 많은 장면들이 사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해져오는 보편적인 설화의 모티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수많은 신화와 설화를 탐독했다. 고대부터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이야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지고 구전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들과 꼭 닮은 스토리들이 내 안에서 자연발생했다는 점이 놀랍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 때 나는 아직 작가로서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열정과 생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왕성한 에너지로 만들어낸 <신화적 풍경> 시리즈에서 최초의 <생명나무>가 발아되었다. 또 오늘날 나의 작가 언어이자 고유한 메타포로 사용 중인 ‘빛’도, 사진 작업이지만 물질적인 상태를 초월하게 만드는 다양한 방식을 탐색하던 그 시절에 재발견한 소중한 선물이었다. 

흰 사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다. 자연, 신화, 원시성에 대한 생득적인 애정이 깨어났다. 

고대부터 사슴은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이집트 신화 속의 신들은 사슴의 뿔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고대 유럽에서도 사슴이나 순록을 신의 현현으로 여겼다. 시베리아 유목민들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사슴의 뿔을 신의 뜻을 감지하는 신성매체로 여겨, 샤먼이나 족장 또는 임금의 머리 장식으로 사용했다. 일본에서는 사슴을 신의 사자로 정중하게 보호했다. 만주나 중국 북방 민족들도 사슴신에 대한 신앙을 품었다. 중국 역사책에는 흰 사슴이 평화와 행운의 상징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슴은 장수의 상징으로 천년을 살면 청록(靑鹿) 되고 청록이 다시 500년을 더 살면 백록(白鹿)이 된다는 재미있는 설화도 전해 내려온다. 경주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의 출(出)자 구조도 사슴뿔을 형상화한 것이고,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 신화에서 사슴은 지상과 천상을 매개하는 동물로 그려졌다. 유럽인들은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슴을 신성하게 여겨 도시나 명문가를 상징하는 문장에 사슴을 그려 넣었고, 오늘날에도 유럽에서는 사슴뿔이 집을 지키는 부적이나 악마를 쫓는 의미의 장식물로 사용되고 있다. 

<생명나무>에서 <나비>로 이어졌던 작업이 흰 사슴으로 이어졌다. 고대부터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슴뿔이 신의 뜻을 감지하는 신성한 매개체로 여겨졌다는 지점이 마음을 당겼다. 또한 뿔의 형상이 나무를 닮았다는 것과, 봄에 돋아나 자라다가 이듬해 봄이면 떨어진 후 다시 돋아 계절처럼 순환한다는 사실이 새삼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러한 사슴뿔의 속성은 그 동안 <생명나무>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모든 의미를 함의하는 것이었고, 사슴의 육체는 그 자체로 대지의 경이로운 원리를 갖춘 기, 숨, 엘랑비탈의 모체였으며, 생명나무의 뿌리였다. 

나는 요즘 흰 사슴과 농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베리에이션은 영감의 완전성을 추구해 가는 과정임을 밝혀둔다.      

LUCA(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는 찰스 다윈이 만든 용어로, 모든 생명의 공동조상의 약자다. 최초의 생명이자 생명나무의 뿌리에 해당하는 가상의 생명체를 의미한다.
                                                                 이정록. 2021

<LUCA> Artist’s note

When I was working on the ‘Tree of Life’ and ‘Nabi’ in Jeju for several years, I came across the folklore of the white deer. Hallasan Mountain was originally the mountain of Taoist hermits, who used to ride on white deer. It is said that Taoist hermits would give the white deer the clear water at the summit of Hallasan Mountain to drink. Baengnokdam Lake at the summit of Hallasan Mountain means ‘the pond where white deer drink water.’  

It was quite a fascinating story. It had been an experimental period during which I tried to visually express spiritual impressions or imaginations from primitive and poetic landscapes through various productions and setups. 

At the time, I learned that the many scenes, which I thought had been outputs of my imagination sparked from the sublimity and awe felt wholly by myself alone, were in fact motifs of universal folklore passed down across all countries of the world. Afterward, I pored over numerous myths and folklores. I discovered that ever since the ancient times, similar stories sprung up simultaneously and were passed down orally around the world, and it felt marvelous and mystical that the same type of stories had been spontaneously created within myself. 

I had not yet distinguished myself as an artist, but I was bursting with passion and life. From the ‘Mythic Scape’ series, which had been created with vigorous energy, sprouted the first ‘Tree of Life.’ Furthermore, ‘light,’ which has today become my language as an artist and the unique metaphor that I use, was a precious gift that I rediscovered during the period when I explored various methods to transcend the physical state, albeit a work of photography.  

My heart raced when I heard the story of the white deer. My innate affection for nature, myths, and primitiveness was awakened. 

From time immemorial, the deer has been regarded as a divine being. Gods in Egyptian myths are portrayed as having antlers. In ancient Europe, the deer or reindeer were regarded as the incarnation of god. Siberian nomads considered antlers, which stretch out toward the sky, as a sacred medium to detect the will of god, and used them as head adornments of shamans, patriarchs, or kings. In Japan, the deer was respectfully protected as the messenger of god. People of Manchuria or northern regions of China held faith in the deer god. In Chinese history books, the white deer is recorded as the symbol of peace and good fortune. In Korea, where the deer is a symbol of longevity, there is an interesting folklore that says that when a deer lives for a thousand years, it becomes a blue deer, and when a blue deer lives for another 500 years, it becomes a white deer. The shape of a golden crown (出) unearthed in the ancient tomb in Gyeongju is an embodiment of the antler, and the myth of King Dongmyeong in Yi Gyubo’s Donggukisanggukjip depicts the deer as an animal that mediates between heaven and earth. Despite the influence of Christianity’s monotheism, Europeans still considered the deer as a divine being, engraving it in the coat of arms symbolizing cities or noble families. And, to this day in Europe, antlers are used as a talisman that guards the house or an ornament that drives off demons.   

My work that led from the ‘Tree of Life’ to ‘Nabi’ was followed by the white deer. The fact that antlers were regarded as a sacred medium to detect the will of god since the ancient times across a vast space of land captivated my heart. Furthermore, the fact that the shape of the antler is similar to the tree and that the antler rotates like seasons, sprouting in the spring and growing until the following spring when it is shed and regrown, threw a new mystical light on antlers for me. Such characteristics of antlers implied all that I had striven to express through the ‘Tree of Life’ over the years. And the flesh of the deer was in itself the mother of energy, breath, and élan vital, which is endowed with the marvelous principle of the earth, and was the root of the tree of life. 

These days, I am spending dedicated time with the white deer. I would like to make it clear that variations born from this process are the course of pursuing the completeness of inspiration.      

LUCA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is a term coined by Charles Darwin, meaning the common ancestors of all species. It signifies the hypothetical organism that corresponds to the first living being and root of the tree of life.
                                                                          Lee, Jeong lok 2021

흰 사슴, 루카

흰 사슴, 루카(LUCA) 시리즈는 제주 설화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되었다. 한라산은 신선들의 산으로, 신선들은 흰 사슴을 타고 다녔다. 백록담은 ‘흰 사슴이 물을 마시는 연못’이라는 의미다.
 고대부터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슴뿔이 신의 뜻을 감지하는 신성한 매개체로 여겨졌다. 사슴뿔의 형상은 나무를 닮았다. 봄에 돋아나 자라다가 이듬해 봄이면 떨어진 후 다시 돋아 계절처럼 순환한다. 그러한 사슴뿔의 속성은 그 동안 <생명나무>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모든 의미를 함의하는 것이었고, 사슴의 육체는 그 자체로 대지의 경이로운 원리를 갖춘 기, 숨, 엘랑비탈의 모체이며, 생명나무의 뿌리다.
 루카(LUCA)는 동식물이 일원화된 자연의 아름다운 생명력이 체화된 존재의 메타포다. 전작은 생명나무와 사슴을 일체화한 형상을 만들어 실내에서 작업했다. 다양한 종류의 빛과 공기 중의 수분 농도를 컨트롤 해 비물질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완전성을 추구하고자 했다.
 신작은 자연에서 진행했다.
전면에 루카가 등장하긴 하지만, 실내 작업과 야외 작업은 성격이 사뭇 다르다. 실내에서는 내가 모든 요소를 컨트롤 할 수 있지만, 스튜디오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어디서 작업할 것인가? 
장소를 고르는 일은 온전히 나의 몫인 듯 하지만, 실은 만남이 허락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눈이 아니라 마음을 당기는 곳,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기분이 드는 그런 곳은 의지만으로 찾아낼 수 없다. 
지난 몇 년 간 먼 지역들을 떠돌았다. 꿈꾸었던 곳들을 유랑하며 작업했던 날들은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돌아와 다시 남도의 풍경 속에 서니, 익숙한 풍경의 진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작업한 장소들은 새로 터를 잡은 작업실에서 가까운 곳들이다. 화려하거나 유서 깊은 장소는 아니다. 농부들의 삶의 터전 언저리의 평범한 장소들로 어쩌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곳들이다. 
나는 남도의 속살 같은 그곳에 깃든 고유의 에너지가 켜켜이 농축되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경이로운 순간을 오롯이 지켜보며, 그 생생한 생명력과 경이로운 에너지를 루카와 빛을 통해 형상화하고자 했다. 

                                                                         2023 이정록

이정록은 2007년에 ‘신화적 풍경‘이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연 바 있다. 그런데 이 명명은 사실상 그의 작품 세계 전체에 적용해도 무방하다. 우리가 ‘신화적’이라는 표현에서 떠올리는 오래된 시간, 초자연적인 현상, 신비로운 분위기, 그리고 이야기적 요소 같은 것들은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이정록은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하나의 주제에 천착해 왔으며, 그것은 그가 여러 매체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경험적 세계 너머에 있는 어떤 근원적인 것 – 신성, 우주의 질서, 혹은 생명의 근원일 수도 있는 어떤 에너지를 표현해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하나의 주제는 대체로 자연 풍경이나 나무, 나비와 같은 대상에 빛이라는 장치를 가미하여 변주되어왔다.

빛은 이정록 작가의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1990년대 후반에 흑백 은염으로 제작한 <사적인 빛> 연작에서 그는 “라이트 페인팅 기법을 통해 비물질적인 빛을 물질적인 오브제로 전이시키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제목을 통해 빛이 단순히 형식적 기법을 넘어서 작업의 주제를 드러내는 핵심적 요소임을 암시했다. 카메라 플래시의 순간광의 중첩을 본격화한 <생명나무>(2009-)를 거쳐 빛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한 <나비>(2015)에 이르면 빛은 단순한 기법을 넘어 작품의 중심 소재로 기능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경향은 아이슬란드의 독특한 자연 풍광과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배경으로 제작한 <아이슬란드>(2019)와 <산티아고>(2019) 연작으로도 이어진다. 특히 <아이슬란드>와 <산티아고>에서는 산등성이와 들판, 계곡과 호수, 나무와 숲, 돌무덤과 길, 오래된 건축물 위로 원이나 나비 등의 형상을 한 빛이 흐르는 듯 표현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생명력의 상징으로서의 빛이 어떤 공간을 통과하는 거대한 흐름, 즉 시간이라는 요소와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루카>(2020~2023) 연작이 빛을 이용하는 방식은 근작인 <아이슬란드>나 <산티아고>보다는 2009년에 발표한 <생명나무>에 더 가까워 보인다. 무엇보다도 인공빛을 활용하여 만들어 낸 사슴 형상을 화면 중앙에 배치하고 어슴프레한 자연광의 배경과 대비시킨, 초상과 풍경을 결합한 듯한 구도가 그러하다. 이러한 구도는 어떤 영원불멸한 존재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빛을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어떤 시간의 흐름처럼 보여준 전작들과는 분명히 궤를 달리한다. 이는 물론 작품의 배경, 즉 촬영 장소라는 맥락과도 관련이 있다. 짐작컨대 <아이슬란드>와 <산티아고>에서는 장소 자체가 지니는 시각적 아우라가 압도적이라 작가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이미 그 자체로 많은 드라마와 오랜 시간을 머금고 있는 자연 풍경 자체의 경이로움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을 것이다. 

그런데 <루카>는 얼핏 형식적으로 비슷해 보이는 <생명나무>와도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사실 작가가 생명의 근원적 에너지에 대한 탐색의 과정에서 나무라는 소재에 주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무는 거의 모든 문화권의 종교와 신화에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며 오랫동안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는 인류가 오랜 시간 동안 나무가 매해 잎을 피웠다가 떨구기를 반복하며, 인간보다 더 크게 자라나고 더 오래 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무를 성장과 죽음, 부활의 강력한 상징으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무는 보편성을 지닌 상징물이다. 그런데 나무와는 달리, 흰 사슴은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는 제주도에서 촬영을 하던 중에 백록담이라는 이름이 흰 사슴이 노니는 곳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전설을 들은 후 흰 사슴의 이미지를 작업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제목의 루카(LUCA)는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따왔다고 한다. 작가는 사슴 조형물을 만들고 스튜디오에서 형식실험을 거친 후 야외로 무대를 옮기는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이 시리즈를 만들어냈으며, 이 작업을 통해 한층 더 신화에 다가간다. 

한편 <생명나무>의 배경이 장소와 시간을 특정하기 어려운 모호함을 통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루카>의 배경은 완만한 산등성이와 대나무 숲, 노란 유채꽃밭 등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풍경을 담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전남 화순 등 작가의 거주지에서 비교적 근거리에 위치한 이 작품의 배경은 계절감도 비교적 생생히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풍경에 조금 더 가까이 닿아 있다. 흰 사슴이라는 전설 속 존재를 조형물로 만들어 사진에 등장시키는 꽤나 과감한 선택을 하면서, 작가는 자칫 이 이미지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과는 영 무관한, 판타지아의 영역으로 넘어가 버리는 것을 경계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오히려 좀더 친숙하고 현실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선택한 것은 아닌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더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미지, 더 ‘신화적인’ 풍경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실제로 이정록의 작품 제작 과정에는 적절한 장소를 찾아 헤매고, 각종 조형물을 제작하고 촬영 장비를 갖추어 설치하고, 하루 중 자연광이 미묘하게 변화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적당한 타이밍을 노리며 하염없이 대기하는 등, 온갖 수공예적이고 수고스러운 노동이 동원된다. 어쨌거나 한 장의 이미지라는 결과물로 평가받는 시각예술에서 이 과정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예술 수용의 입장에서는 개개인의 감상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밖에 답할 도리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적어도 작가는 애초에 답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질문을 일생의 과제처럼 떠안고, 끊임없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직접 몸을 움직이는 지난한 노동의 과정을 겪어내며, 미련하게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어느 순간 스스로 그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이사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