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tiago

산티아고 작가노트

작년 한 해는 작가로 살아온 20주년을 돌아보는 해였다. 그 간 걸어온 길을 정리해 에세이를 펴냈고, 처음으로 사진집도 냈다. 관련 전시와 행사들로 분주하게 보냈지만, 속으로는 하루하루 달려온 날들이 쌓여 어느새 20년이 되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나는 산티아고로 떠났다. 어떤 계획이나 의도는 없었다. 그저 잠시 삶의 리듬을 끊고, 혼자 걷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선택한 것은 화살표 때문이었다. 이 유서 깊은 순례길은 지도를 손에 붙들고 갈팡질팡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되었다. 

내가 걸은 길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수많은 루트 중 '카미노 프란세스(Camino Francés)'였다. '프랑스 사람들의 길'이라는 의미의 이 길은 프랑스 남부의 국경마을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을 넘어 800km거리를 걷는 길이었다. 완주까지는 짧게는 30일에서 길게는 40일 정도가 걸린다.

배낭을 멘 도보여행은 처음이었다. 꼭 필요한 것들로만 짐을 꾸렸다. 자동차로 달리면 한 두 시간도 채 안 걸릴 거리를 며칠씩 걸었다. 돌이나 나무를 두 손으로 어루만지고, 꽃과 풀에 코를 박고 향기를 들이키고, 땅이나 숲이 발산하는 미묘한 에너지에 감탄하느라 해가 어둑어둑해져서야 겨우 알베르게에 도착하곤 했다. 수많은 마을과 성당들, 산과 숲들을 지났고, 더위와 추위, 바람과 비를 만났다. 굳은살이 단단하게 생겼다.  

침묵 속에서 흙길을 걷는 동안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수많은 질문들이 깨어났다. 나 자신에 대하여, 타인에 대하여, 자연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다. 그 때 깨달은 것들이나 신비로운 체험들에 대해서 언어로 표현하면 진부한 것이 되고 말 것 같아서, 작가노트는 어느 성당에서 만난 순례자의 기도로 갈음하고자 한다. 
 
 
비록 제가 동쪽에서부터 서쪽에 이르기까지 
산과 계곡을 넘어 모든 길을 여행했을지라도,
저 자신이 되는 자유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저는 어디에도 이르지 않은 것입니다.
 
비록 제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저의 모든 소유를 나누고
천 갈래 길 위의 순례자들과 친구가 되었거나
성자 혹은 왕자와 알베르게에 함께 머물렀을지라도,
제가 내일 저의 이웃을 용서할 수 없다면
저는 어디에도 이르지 않은 것입니다.
 
비록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저의 짐을 짊어지고서
용기가 필요한 모든 순례자를 기다리거나
저의 잠자리를 저보다 늦게 도착한 이에게 내어주거나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저의 물병을 건네주었을지라도,
집과 일터에 돌아가 유대감을 쌓거나 
행복, 평화 그리고 화합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저는 어디에도 이르지 않은 것입니다.
  
비록 제가 모든 기념물을 보고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았을지라도
비록 제가 모든 언어로 인사하는 법을 배우거나 
모든 샘에서 솟아난 깨끗한 물을 맛보았을지라도.
제가 이토록 한없는 아름다움과 이토록 많은 평화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저는 어디에도 이르지 않은 것입니다.


                                                                       2019 이정록

순례길 위에 나비
정은정 기자

자연의 빛이 오묘한 빛깔로 풍경을 감싸고, 찰나에 눈부시게 터지는 플래시가 반짝이는 나비를 풀어놓았다. 소망하거나 상상하던 아름다움, 인적 없이 고요한 풍경이기에 그 아름다움이 크다. 이정록은 대표작 “나비”에 이어 신작 “길(The Way)” 위에 나비들을 다시 펼쳤다. 침묵 속에 걸으며 신을 만나기를, 성인의 길을 참배하기를, 기도하며 영성을 찾기를 또는 다만 걷기를 바라며 떠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2019년 그 길 위에 이정록의 빛나는 나비들이 순례를 떠났다.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페인 북부의 길들은 조가비 모양처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어졌다. 그 길들은 성 야고보(Santiago)의 유해가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으로 도보 순례를 떠나는 길로 약 800km에 이른다. 이정록은 그중 ‘카미노 프란세스(Camino Francés)’를 선택했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지나 서쪽 땅끝 피스테라까지 총 930km를 오가며 사진을 촬영했다. 그는 촬영을 위해 세 차례 산티아고 순례길에 들어섰다.
처음 갔을 땐 그 길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살피며 걷기도 하고 차로 움직이기도 했다. 그리고 봄에 다시 가서 카메라 없이 절반을 걷다 그만의 ‘느낌’이 느껴지는 곳에 멈춰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돌아가서 카메라를 가져와 촬영했다. 계절이 바뀐 가을에 다시 찾아가 그 이후의 절반을 걷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차로 움직이며 촬영해갔다. 촬영 장소로 선택한 곳은 특별한 역사적, 종교적 의미가 있는 곳이 아니다. 이전 작품들에서도 중요했던 그만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곳들이다.
이정록이 말하는 그만의 특별한 ‘느낌’은 일반적인 감각과 감성적 차원을 넘어선다. 다분히 주관적 체험으로 만나는 ‘느낌’이다. 그는 대상으로서 신 또는 신성이 아닌 인간 내부에 주체적인 ‘신성’이 있다고 믿는다. 어떤 조건이 되면 발현되는데 그것이 곧 그가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존재론적으로 밀도감이 높은 상태”에 이르면 스스로가 투명해지고, 그때 어떤 종류의 에너지가 그를 통과한다. 그는 그때의 느낌을 잡아채, 줄기차게 그것을 이미지로 시각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무에 영혼이 있을까, 나무가 왜 신비로울까 고민했던 어느 날 익숙한 곳에서 익히 보아오던 나무로부터 ‘느낌’을 받고 “생명나무” 작품을 시작했다. 또 거룩하고 성스러운 터키의 동굴교회나 캄보디아의 사원, 경주의 폐사지에서는 장소(place)의 에너지가 주는 ‘느낌’을 만났다. 이후 숲에서의 특별한 “나비 체험”을 통해 떠올린 나비 형상으로 그것을 표현해 작품 “나비”를 완성했다. 이번 신작 “길”에서는 천 년이 넘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순례길에서 그 ‘느낌’을 찾고자 떠났다. 수없이 걷고 또 걷는 중 그는 대상이 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걸으면서 주체적으로 그 ‘느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시각화하는 데 가장 적절한 형상으로 다시 ‘나비’를 선택했다. 이정록의 순례길 위 나비들은 그렇게 길 위로 무리 지어 날아올랐다.
어둠과 고요, 그리고 플래시 이정록이 “신화적 풍경”(2007)에서부터 보여주고 있는 ‘빛’을 이용한 촬영 방법은 그의 작품에서 주요하다. 사진에서 그 빛이 다만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또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촬영되어서 뿐만도 아니다. 그 ‘빛’은 흑백이나 컬러 네거티브 필름, 디지털카메라 촬영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그가 꾸준히 사용하고 있는 촬영방법으로만 가능한 ‘빛’이기 때문이다. 그 ‘빛’은 몇 시간에 걸친 빛의 축적, 어둠 속에서 강렬하게 수백, 수천 번에 걸쳐 터지는 플래시의 흔적이 한 장의 필름에 쌓여 만든 이정록의 빛이다.

작가로서 이정록이 작품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그의 ‘느낌’을 “빛”으로 시각화하는 데 그는 여러 차례, 다양한 방식의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었다. 그리고 찾은 것이 지금의 촬영방식이며, 신작 “The Way”의 촬영도 다르지 않다. 그는 4×5 대형카메라(Linhof Technikardan)에 4×5 슬라이드 필름(Fujifilm Fujiro Velvia 100)을 사용하며 상황에 따라 렌즈 90/150/210㎜(Schneider)를 골라 사용한다. 촬영장소가 정해지면 해 질 녘과 새벽녘에 만들어지는 빛 또는 한밤의 달빛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색을 만들어내는 빛을 골라 촬영 시간을 선택한다.프레임을 정하고 선택한 촬영 시간대에 벌브(B) 셔터로 수 초~수십 분 동안 노출을 한 번 주고 셔터를 닫지 않은 채 크고 검은 천으로 렌즈를 포함한 카메라 전체를 덮는다. 그리고 빛이 없는 깜깜한 밤, 천을 걷어내고 자신이 그 장소에서 마주한 ‘느낌’을 시각화하기 위해 플래시 작업을 수 분~수 시간동안 진행한다. 강렬한 순간광을 낼 수 있는 플래시에 나비 형상과 색 필터를 씌우고 수백~수천 번 터트려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The Way”에서 보이는 지평선 끝까지 난 길을 나비로 가득 채운 작품들은 그가 그 끝에서 오리걸음으로 양손으로 플래시를 터트리며 카메라까지 닿은 흔적을 담고 있다.
지난해 보이는 촬영방식을 이정록이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다른 방법으로 그가 표현하고 싶은 ‘느낌’을 시각화할 수 없고, 그 스스로 촬영하는 동안 강렬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을 고립하여 홀로 고요히, 나와 대상의 구분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황홀하게 체험했던 자기만의 ‘느낌’을 다시 추적하며, 찰나에 눈부시게 비치는 순간광으로 그것을 시각화하는 그 시간동안 그는 희열에 넘친다. 그에게 촬영은 힘든 시간이 아니라 행복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오롯이 사진에 남겨져 그의 작품은 찬란하다.그가 대상인 사물과 장소로부터 또 주체인 그 스스로에게서 마주한 그 ‘느낌’은 명확하게 규명하기 어렵다. 그는 그것을 주관적이고, 체험적이며, 일종의 ‘계시(啓示)’라고도 말했다. 다만 그는 그 ‘느낌’을 사진으로 재현할 수 없어 표현하기 위해 애써 왔고, 그 표현으로써 태고부터 우리와 세계 안에 있는 신성을 전달하고 싶다. 그의 작품이 다만 아름다운 것에 그치지 않고 신비로움을 풍긴다면 아마도 그것은 사진에 그의 ‘느낌’이 전해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다만 반짝거리는 고요만을 느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느낌’의 시초일 수도 있으니 기다려볼 만하다.

산티아고가 기다렸다
황석권 《월간미술》 편집장

이정록과 대화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가 작가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종교와 관련한 일을 했었을 거라고. 그만큼 이정록은 작업에 담고자 하는 내용을 탐색하는 과정과 함께 불명확하고 언어로서 설명될 수 없는 어떤 ‘길’을 간다. 그런데 그 행보가 일견 매개자의 그것과 비슷하다. 알려졌듯 신적 존재와 인간을 연결해 주는 존재를 ‘영매(靈媒, medium)’라 한다. 다다를 수 없는, 아니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없는 존재는 인간이 이성으로 인지할 수 없는 세계에 존재한다. 그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을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이정록이다. 
이정록이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여는 개인전 <the Way>는 그의 <생명나무>, <나비> 연작을 비롯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조우한 그의 역할과의 소통을 펼친 자리다. 1, 2부로 나눠 열리는 이번 전시는 회고와 현재의 이정록을 이전 작업과 신작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이정록의 이전 작업을 보자. <신화적 풍경(Mythic Scape)>, <사적 성소(Private sacred place)>, <생명나무(Tree of Life)>, <나비(Nabi)> 연작은 앞서 언급한 매개자 이정록이 대상과 그것이 존재하는 장소와 교감한 흔적이다. 그 흔적을 보여주는 요소는 바로 ‘빛’이다. 그의 프레임에는 주요한 대상인 자연, 나무 혹은 오랜 역사의 공간이라는 분명한 가시적 대상과 더불어 작가적 시각으로 발견한 비가시적 요소가 원형 혹은 문자, 나비 등 빛의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이정록의 작업을 대하는 관람객은 먼저 작업에 들였던 그의 테크니컬한 요소에 경탄을 숨기지 못할 것이다. 정교하게 계산된 그의 프레임은 더러는 흔한 디지털 후작업으로 완성하지 않았냐는 의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작가노트를 읽어보면 작가는 그와 자연이 교통할 수 있는 그 순간을 위해 과장된 수사(修辭)를 동원한 것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 교통의 과정을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획득해냈다. 아니 획득하고 이룩한 것이 아니라 기다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막상 촬영장소에서 카메라 가방을 열지도 못했던 그가 대상에서 발견한 에너지를 자신과 연결짓고 교신하며 그것을 모자람 없이 표현하려한 작업 과정은 과몰입만으로는 이룩될 수 없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나는 햇살 좋은 날, 영겁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한 광활한 갯벌이나 해뜨기 직전의 안개 자욱한 호수 같은 풍경을 대할 때면 하늘에서 신령스런 알이 내려와 우리 미래를 감당해 낼 그 누군가가 탄생할 것 같다." (작가노트, 2007)

이정록의 작업실에서 이뤄진 대화를 복기해보니 마치 TV에서 방영되는 오락프로그램의 ‘스피드 퀴즈’와도 같았다. 제한된 시간 내 최소한의 단서로 적확한 어떤 ‘단어’를 찾아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진 오답과 그것을 정정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가 찾아내고자 하는 답은 우주에 오로지 하나만 있었다. 그의 작업을 설명하거나 분석할 언어를 찾는 일이 ‘0’에 수렴한다는 의미와 같다. 
없으나 있다라?
그래서일까? 이정록이 발견한 대상의 에너지 혹은 기운은 쉽게, 기술적인 완성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 박힌 “오묘한 색감, 조형적인 구성”의 그 광경이 필름의 잠상(潛像)에서 인화지에 자리잡았을 때 부지기수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것은 완벽주의자의 유난스러움이 아니라 그가 발견한 형상이 작업의 과정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이며 그만이 알고 있는 그 광경이 실로 창대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의 작업은 대단히 종교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 현대미술은 물론이거니와 미술의 역사 내내 종교성은 미술과 반목했다. 이를 상기해보면 이정록은 대단히 위험한 주제를 선택한 것은 아닌가 우려되기도 한다. 신성의 비재현, 비가시화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태도를 취하는데 과학이나 언어 모두가 그에게 뾰족한 답을 주지

그래서 이정록이 산티아고를 찾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산티아고가 이정록을 기다렸다는 말도 맞다. 

이정록의 이번 개인전에 등장하는 장소는 이미 대표적인 순례지로 카톨릭이나 기독교 교인이 아니더라도 전세계 탐방객들이 모여드는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이다. 프랑스령(領)인 생 장 피에드 드 포르(S. Jean Pied de Port)에서 출발, 피렌체 산맥을 넘어 스페인 서쪽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거쳐 이른바 유럽의 ‘땅끝’으로 불린다는 피스테라(Fisterra)까지 이르는 800km의 머나먼 길. 그냥 걷기도 힘든 길을 작업을 위한 장비를 짊어지고 걸었던 작가는 과거 이곳을 걸었던 이들이 만든 길에서 무엇을 만나려 한 것일까? 그 멀고 편치 않은 순례길. 이 길을 걸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순례(pilgrimage)는 “종교상의 여러 성지나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행위”다. 보통 순례 행위의 이유는 그 장소가 특정 종교의 경전의 내용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성립하기 위한 여러 조건이 있지만 창시자와 경전, 그리고 그 추종자가 존재해야 하는데 순례는 바로 경전에 등장하는 여러 상황을 확인하는 적극적인 행위이며 고단함을 수반한다. 이를 통해 신자로서 공통된 의식을 확인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영향 미치게 한다. 독립큐레이터 수전 솔린스(Susan Sollins)는 “우리 자신과 주변 세상의 연관에 대해 숙고하며, 설명할 수 없어 보이는 경험에 대해 검토한다”는 말을 했듯이. 
그런데 그의 여정을 듣고 있자니 그가 정작 추구하고자 했던 여정의 목적은 신약 사도행전 12장에 적힌 야고보의 순교 현장을 통해 역사를 확인하거나 개인적으로 침잠과 수행의 시간을 갖고자 목적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번 신작을 보면 여정에서 만난 화려한 공간보다 그와 충분히 교신한 장소에 천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말대로 “낯선 장소와 작가 자신을 부딪치게 하여 이미지화한 흔적”의 결과물이다. 자신이 여기에서 발견한 빛이 길을 따라 이어졌기도 했고 역으로 길이 빛으로 만들어졌다. 누군가가 걸었던 길이기도 하지만 이정록이라는 순례자가 새롭게 닦은 길도 발견할 수 있다. 길의 형태가 아닌 장소에서 발견한 에너지가 원형 혹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과도 같은 조가비 형태로도 드러나 있다. 그가 이전 작업을 통해 선보였던 나비는 ‘영혼’과 ‘선지자’라는 동서양의 의미가 중첩된 바, 종교적 성지라는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의 역사와 의미와 어우러져 영성성의 상승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다만 이정록은 과함을 경계하는 듯했다. 종교성을 그의 여정에서 극단적으로 제한했고 오히려 밀어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이정록은 바로 자신의 삶에 영향 미치는 요소를 발견하고 그것을 알고, 인식하고 최종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이번 작업을 벌인 것 같다. 온전히 스스로 내부에 억압됐던 생각들. 작가는 대면하기 싫어 묻어둔 자신의 모습은 온전히 스스로 존재하는 본질적인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자신의 모습을 극복하고 싶은 욕망이 차올랐을 것이다. 그래야만 그가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상의 에너지를 자신과 동기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자신이 작업을 하는 이유라고 믿는 이정록이다. 
이정록과의 대화에서 그가 한 말이 있다. “내가 작업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작업이 나를 이끌었다”라고. 얼핏 그의 이러한 발언을 보면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어떤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염원이 투영됐다고 보인다. 그리고 이른바 종교의 수행을 거친 이들이 다다르는 무아의 상태 혹은 작업이 스스로 그러하게끔 만들며 작가적 개입(욕망)을 최소화하려는. 하지만 이 말과 달리 그는 지독히도 스스로를 몰아가는 작업을 한다. 그가 완성이 아니라고 말한, 그의 작업실 한 벽을 차지하고 있는 작업 <생명나무>가 그 증거다. 

글의 마지막은 그에게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물었던 필자의 질문에 답한 그의 말로 마무리 해야겠다. 그의 말이 묘하게도 그간의 작업과정을 함축해 설명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정록은 다다랐던 곳을 목적지로 삼지 않는다. 잠시 배낭을 벗었던 곳이 중간 기착지였던 것이다. 곧 채비를 할 그다.

“걷다보니 목적지는 숙소가 아니라 길이였다.”

Santiago has waited
Hwang Sukkwon (Editor-in-Chief of the Monthly Art Magazine)
 
I had this thought when talking with Lee Jeonglok. That if he had not walked the path of an artist, he would have done something related to religion. This is how much Lee Jeonglok walks a certain ‘path’ that cannot be described in words together with the process of exploring the content that he tries to encapsulate in his work. But that path is similar to that of an intermediary at first glance. As it is well known, a being that connects divine beings with humans is called a ‘medium(靈媒)’. An existence that cannot be reached or even confirmed exists in a world that cannot be perceived by human intellect. It has been the work of Lee Jeonglok for over 20 years to examine that existence. 
The private exhibition <the Way> that Lee Jeonglok is holding at Soul Art Space is a place where he has communicated with the role that he faced on the Camino de Santiago pilgrimage similarly to his <Tree of Life> and <Nabi> series. This exhibition which is divided into parts 1 and 2 speaks of remembrances and the Lee Jeonglok of today through his previous works and his new pieces. 

First, let us examine the previous works of Lee Jeonglok. The <Mythic Scape>, <Private sacred place>, <Tree of Life>, <Nabi> series are traces that the aforementioned medium Lee Jeonglok connected with subjects and the places they are located at. The element that shows these traces is ‘light’. In his frame, in addition to the clear visible subjects of nature, trees, or old historic spaces which are his major subjects, invisible elements seen through the eye of the artist are expressed through the forms of light such as circles, letters, butterflies, etc. Visitors who view the works of Lee Jeonglok will at first not be able to hide their admiration for the technical elements that he put into his works. His meticulously calculated frame is sometimes the target of suspicion that it was completed through digital post-processing. In addition, if one reads the artist’s notes, he sometimes is misunderstood to have employed exaggerated rhetoric(修辭) for that moment when the artist himself communicates with nature. However, he achieves that process of communication in a way that is more painstaking than anyone else. No, a more accurate expression would be that he waited rather than gained or achieved them. He admitted that he, who was not even able to open his camera bag at the shoot site, could not connect and communicate with the energy discovered at the subject and complete the process of fully expressing that energy through simple excessive immersion. 

"When I faced a scene of an expansive mud flat that seemed to fully preserve perpetuity on a day filled with sunlight or a lake with dense fog just before the sunrise, it seemed that a mystical egg would come down from the sky and give birth to someone who would bear our future." (Artist’s notes, 2007)
 
When I revisited the conversation that occurred at the studio of Lee Jeonglok, it was like the ‘Speed Quiz’ from entertainment shows on TV. This was because it was a process of finding a specific ‘word’ within a limited time using the minimum number of clues. Continued incorrect answers and the efforts of the artist to correct it continued to occur. However, there was only one answer in the entire universe for the answer that he was searching for. This means that the task of finding the words to explain or analyze his works converge to ‘0’. 

What is ‘To be but not to be’?
Perhaps that is why? The energy or the feeling of the subject that Lee Jeonglok discovers is not something that can be achieved easily or through technical prowess. When that scene of “mysterious colors, figurative composition” that was planted in his head moved from the latent image(潛像) on the film to take its place on the photographic paper, he was not satisfied in innumerable ways. This was not the eccentricity of a perfectionist but rather the regret that the image that was discovered was not properly revealed in the work process, and this means that the scene that only he knows is truly awe-inspiring. 
In this case, his work seems to be very religious. But honestly, not only in the case of modern art but throughout the history of art, religion has always been in opposition to art. When thinking of this, I sometimes am concerned that Lee Jeonglok may have chosen a very dangerous subject. This is because it is a form that directly challenges the impossibility to reproduce and the inability to see that which is of the divine. To this, he is forced to take an attitude of facing this head-on, and this is because he has not found any grounds to depart from his religious attitude when he undertakes his work, as neither science nor language provides him with a clear answer.

Therefore, it was natural for Lee Jeonglok to go to Santiago. It is also correct to say that Santiago waited for Lee Jeonglok. 
 
The location that appears in this private exhibition by Lee Jeonglok is the Camino de Santiago, which is already a representative place of pilgrimage where travelers from around the world gather even if they are not Catholic or Christian. It is a long journey lasting 900km that starts from S. Jean Pied de Port, which is a French territory(領), goes over the Pyrenees mountains, passes through the Santiago de Compostela on the western end of Spain, to reach Fisterra, which is called the ‘land’s end’ of Europe. What did the artist want to encounter on this road that was made by those who walked it in the past? That long and difficult pilgrimage. What is the reason they walked this path? A pilgrimage is “the act of visiting various holy places or meaningful locations in a religion and worshiping there”. The reason for common pilgrimage actions is that the location is itself part of the contents of a religious text of a particular religion. While there are various conditions for a religion to exist, there must be a founder, a religious text, and their followers, and a pilgrimage is an assertive action to examine the various situations that appear in the religious text and it is accompanied by hardship. Through this, a common consciousness as a believer is confirmed and this is allowed to have an impact on their lives. This is like the words of the independent curator Susan Sollins who stated, “We consider the relationship between ourselves and our surrounding world, and review the experiences that seem to be unexplainable”. 

In his latest works, he is delving deeper into the locations where he had ample connections rather than the flashy locations that he encountered in his journey. In his own words, it is the results of “the vestiges made into images of the artist facing himself in an unfamiliar location”. The light that he discovered here followed the path and inversely the path was made of the light. While it is also the path that somebody had walked before, new paths forged by the pilgrim called Lee Jeonglok can also be found. The energy discovered in locations that are not in the form of a path is shown to be in a circular form or in the form of a scallop, which is the symbol of the Camino de Santiago. As the butterfly that he introduced in his previous works included both the meanings from the East and West of the ‘spirit’ and a ‘prophet’, it harmonizes with the history and meaning of the holy place that is the Camino de Santiago to reveal a synergy effect of the divine. However, it seemed that Lee Jeonglok was wary of excess. He limited religion from his journey to the extreme and he could be suspected of rather attempting to push it out. 

It seems that Lee Jeonglok started this work to discover the elements that affected his own life, to identify it, to perceive it, and ultimately to escape from it. The thoughts that were suppressed wholly within himself. The artist did not think that the image of himself that he suppressed because he did not want to face it was the fundamental image of himself that wholly exists independently. Therefore, he must have been full of desire to overcome the image of himself haphazardly moving between ideals and reality. He believed that only through this would he be able to synchronize himself with the energy of the subject, which he considered to be most important. 
There is something that Lee Jeonglok said in my conversation with him. “I did not draw out my work, but it is my work that drew me out”. At first glance, these words from him can be seen to project a desire to raise a certain ‘level’ in conducting his work. As well as a desire for the state of selflessness that those who have gone through religious asceticism reach or to minimize the artistic intervention(desire) to allow the work to draw itself. However, unlike these words, he conducts work by severely driving himself. Evidence of this is the work <Tree of Life> which he says is not completed and which takes up one wall of his studio. 

I would like to end these words with the answer that he gave to the question of this author regarding his journey of the Camino de Santiago. This is because I felt that his words uncannily described in summary his work process until now. Lee Jeonglok did not consider the place he arrived at to be his destination. It was only a layover where he lay down his backpack for a while. He will soon prepare to leave again.
 
“As I walked, I found that the destination was not the lodging but the road.”